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알쓸소잡

디지털 경제의 두 얼굴,
편리함과 스트레스

글 · 박현갑 <한국소비자원 비상임 이사, 서울신문 논설위원>

우리는 디지털 경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디지털 경제’란 생산, 소비, 유통 등 경제활동이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정보와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체제를 말하는데요. 시공간의 제약 없이 경제활동이 이뤄지며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로 인해 불확실성이 증가한다는 특징이 있죠.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 생산자와 소비자는 ‘편리함’이라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생산자는 생산과정의 디지털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소비자는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편리함의 이면에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하는 압박감, 이른바 ‘디지털 스트레스’에 직면한다는 것인데요. 아래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소비자 안전 조치, 되려 반발 불러

지난 5월, 정부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등 80개 품목에 대해 해외직구 금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KC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직구를 원천 봉쇄한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의도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결국 정부는 사후 검증으로 정책을 바꿨습니다.

해외직구는 편리함 중심으로 디지털 경제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해외직구를 하는 소비자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제품 비교는 물론 반품과 환불의 용이성, 구매과정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등 제품 선택부터 구매가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의사결정을 거친 소비자의 피로감은 고조될 수밖에요. 만약 정부가 소비자의 고충을 고려했다면 안전성만을 이유로 정책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 번째

티몬과 위메프 사태로 본 정보의 비대칭 문제

지난 7월,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미정산 사태가 불거졌습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처럼 소비자에게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을 제때 정산하지 못하면서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 손해를 입혔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정산 구조에 있었습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지불한 금액은 판매자에게 즉시 전달되지 않고, 구매가 확정된 이후에야 정산되는데요. 티몬과 위메프는 판매자에게 정산해야 할 대금을 회사 인수 자금으로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티몬·위메프 정산 구조]

더욱이 두 회사는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권을 ‘역대급 할인’으로 선전하며 소비자를 유혹했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정보 비대칭 문제로 플랫폼의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할인 이벤트를 재테크 기회로 오판했다가 금전적 손실을 보고, 무력감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디지털 경제의 편리함 이면에 있는 정보 비대칭성과 복잡한 거래 시스템이 소비자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보 과부하와 디지털 스트레스

디지털 경제는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반면에 복잡한 정보 환경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는 곧 정보 과부하로 인한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산업화 경제 시대에서는 겪지 않아도 되었던 디지털 스트레스가 현대 소비자들에게 일상이 된 셈이죠. 이러한 스트레스 요인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요금제나 OTT 구독 서비스는 기술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수시로 바뀌며, 소비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비교하도록 합니다. 온라인 쇼핑 시 발생하는 결제 오류나 배송 문제도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죠. 기업은 챗봇 같은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해 소비자 민원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지만, 소비자는 스무고개처럼 기계가 묻는 여러 질문에 답해야 담당자와 연결되기에 스트레스만 가중됩니다.

결국 디지털 경제 시대의 소비자들은 산업화 시대의 소비자보다 신체적으로는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비교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현명한 경제생활이 어려워지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 기업, 소비자 간 협력체계 강화해야

소비자 고충을 해결하려면 실질적인 소비자 주권 강화가 필요합니다. 헌법 124조에서는 “국가는 건전한 소비 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명시하며, 소비자 주권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소비자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 기업, 소비자 간 공조가 필수적입니다.

먼저 정부는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보강하고,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기업과 협의해 유해 상품과 서비스의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문제가 생기면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죠. 기업은 소비자 친화적인 서비스에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비대면 고객 지원 서비스를 개선하고, 플랫폼 기업은 소비자가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자사 내 거래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구독 관리 앱이나 가격 비교 도구 등을 활용해 정보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등 디지털 경제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디지털 경제는 소비자에게 편리함과 디지털 스트레스를 동시에 안겨줍니다. 정부, 기업, 소비자 간의 협력으로 디지털 경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고 합리적인 경제생활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 소비자시대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