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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덕질

파도의 매력에 퐁당!
“바다 위에서 자연을 즐겨요”

글·안수향 <‘아무튼, 서핑’ 저자>

넘실거리는 파도에 온몸을 내맡기며 스릴을 만끽하는 서핑. ‘어푸’하고 나온 순간 입안엔 바다의 짠내가 가득하지만 서프보드 위에서의 자유로움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스포츠입니다. 설렘을 찾아 패들링*을 하고, 짜릿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거센 물길을 가로지르는 안수향 작가님은 서핑을 통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취미는 덕질 7월호에서는 요동치는 바다 위, 일어설 용기를 알려주는 서핑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아요.

*

양손으로 물을 저어 앞으로 전진하는 기술

Q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소비자시대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안수향이라고 합니다. 서툴지만 푸른 빛, 오래된 미래, 아무튼, 서핑 세 권의 책을 출판했고, 상업 촬영과 개인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세계유산 관련 취재를 위해 경주에 방문했다가 고즈넉하고 정다운 분위기에 반해 눌러앉은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네요. 곧 찻집도 개업할 예정이랍니다! 가끔 직업이 몇 개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모두 좋아하는 일들이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으려 열심히 지내고 있어요.

Q

서핑은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 같아요.
어떤 이유로 서핑을 하게 되셨나요?

A

저는 물에서 노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수영장이나 계곡물에 방문해 하루 종일 몸을 담갔을 정도니까요. 그러다가 사회생활에 피로를 느끼고 풀 죽어가며 좋아했던 걸 조금씩 잃어가는 그저 그런 어른이 되었어요. ‘내가 무언가를 좋아했던가’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까마득해진 상태였었죠. 이러한 제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건지, 하루는 친구 부부가 같이 서핑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어요. 서핑은 다 같이 하면 더 재미있다면서요. 평상시에 장난기가 많은 친구인데, 순간 진지해진 친구의 눈빛에 서핑하러 가면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서핑에 입문한 첫날, 서프보드에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물속에 고꾸라지던 옛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 맞다, 나 물에서 노는 거 좋아했지!’ 친구들은 저를 보고 웃고, 웃는 친구들을 보며 저도 웃고, 서핑은 둘째치고 물에서 실컷 웃으며 천진난만하게 노는 그 상황이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으로 데려다준 듯했어요. 그렇게 서핑 입문 첫날부터 여덟 시간 가까이 바다에서 놀며 서핑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바다에 들어가는 행동을 빗대어
“사랑에 빠지는 풍덩”이라 표현하셨어요.
이토록 빠져들게 된 서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서핑을 시작하고 몇 달 지나서 깨닫게 된 사실인데, 오래 서핑한 친구들의 눈동자는 좀 달라요. 맑다고만 하기엔 표현이 좀 부족한데, 어린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걸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달까요? 굉장히 순수하고 명랑해요. 그래서 서핑을 할 때 함께하는 서퍼들의 표정과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참 재밌어요. 어느 날에는 갓 서핑을 하고 나와서 거울에 비친 제 표정을 보게 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렇게 예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제 얼굴이 참 좋은 거예요. 저 역시도 지금까지 봐왔던 서퍼 친구들의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거죠.

서핑은 대회를 목표로 삼지 않는 이상 경쟁 스포츠가 아니에요. 오로지 내 앞에 오는 파도의 손을 꽉 잡고 춤추는 운동이죠. 비가 와도 할 수 있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언제든지 바다에 와서 놀면 돼요. 이런 점들이 서핑을 더 좋아하게 된 매력인 것 같아요.

Q

서핑은 자연과 하는 스포츠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잊지 못할 풍경을 마주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서핑은 실제로 파도를 타는 시간보다 서프보드에 앉아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그냥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 위해, 내가 탈 파도를 기다리기 위해, 가빠진 숨을 고르기 위해서요.

한 번은 멍하니 서프보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였어요. 서핑 초보 시절, 예정에 없던 비가 내린 적이 있었는데요. 서프보드 위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른이 되면 비를 맞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옷이나 가방이 젖으면 안 되니까. 근데 우산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바다 위에 있다는 사실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문득 해변 쪽을 쳐다봤는데, 다들 비를 피하느라 분주해 보였어요. 다시 서퍼들 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들은 웃고 있더라고요. 양쪽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였어요. 그때부터 서핑하러 가는 행위 자체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처럼 느껴지곤 했답니다.

Q

서핑은 파도를 타기 위해 크고 작은 파도를 넘고, 알맞을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스포츠라는데요. “서핑을 위해 난 이렇게까지 해봤다”라는 게 있다면요?

A

바다에 서핑의 관문 같은 게 생길 때가 있어요. 하얗게 깨진 파도가 그 주인공이죠. 파도가 조금 크게 들어오는 날 하얗게 깨진 파도는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서핑은 깨진 파도가 아니라 깨지기 직전의 파도(그린웨이브)를 타고 일어서서 부서지는 파도(화이트웨이브)의 힘을 이용해 나아가는 운동이에요. 그러니까 서핑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하얗게 쏟아지는 파도의 관문을 악착같이 넘어야 한다는 얘기죠. 파도 하나만 넘어간다고 끝이 아니에요. 몇 개의 파도를 넘고 또 넘어야 해요. 이때 체력이 달려서 잠시 쉬다 보면 어느새 해변까지 떠내려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서퍼는 이 순간을 위해 체력을 길러야 한답니다.

여름 파도가 환상적인 부산 다대포에서의 일인데요. 저 역시 파도를 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적이 있어요. 2m 정도의 부서진 파도가 들어와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도무지 넘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기어코 하나를 넘어도 다음 파도에 또 튕겨 나오고,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날이 아니다. 앞에 작은 파도나 타야겠다고 포기하려 하는데, 순간 저 멀리 포인트까지 가서 서핑하고 있는 서퍼들이 문득 보이더라고요. 고작 이것도 넘지 못하는 제 모습에 분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다시 이를 악물고 파도에 덤볐죠. 숨은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고 바닷물은 짜고···.

다대포

울고 싶었던 순간 마지막 파도를 넘어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와, 넘어왔다!!” 포효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그리곤 저도 그들처럼 멋진 파도를 만끽할 수 있었답니다. 결국 그날 얼굴 화상을 입어서 며칠 엄청나게 고생했지만요. 다섯 시간을 파도에 맞아가며 서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마지막 파도 하나를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배운 멋진 하루가 되었습니다.

Q

서핑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담은 책
아무튼, 서핑을 발간하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비자시대 독자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A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 ‘김영사’에서 발행하는 ‘매거진G’에서 원고청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해당 호에선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느끼는 두려운 마음에 관한 주제를 다뤘는데, 저는 서핑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냈었죠. 이를 본 ‘아무튼 시리즈’를 출간하는 출판사 대표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아무튼, 서핑’을 써보자고요. 물론 제가 서핑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이론적으로 빠삭한 것도 아니라서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어릴 적 배드민턴 운동선수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사진 촬영과 집필을 직업으로 삼게 된 스토리, 오직 서핑을 위해 모로코까지 다녀온 열정 등 서핑을 통해 풀어낼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제법 있더라고요. 그 결과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 서핑을 알게 된 이후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기분이에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행복해지고, 쉬는 날 백화점에 가는 대신 바다에 들어가죠. 생활이 바뀌니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고, 마음도 바뀌어요. 서핑은 어릴 적 잃어버린 저를 물에서 건져줬고, 지금도 여전히 저를 구해요. 아무튼, 서핑의 큰 주제는 서핑이지만 책 속에서 사랑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실 거예요.

Q

초보자도 서핑에 도전해볼 수 있는 서핑 포인트를 추천해 주신다면?

A

얕고 맑은 해변에서 좋은 강사님과 함께 안전하게 시작한다면 서핑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서핑 포인트를 추천해 드리자면 부산 송정이나 다대포를 꼽을 수 있겠네요. 특히 송정은 사계절 내내 파도가 들어와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서핑 포인트에요. 봄과 가을에는 포항 월포해수욕장도 정말 좋아요. 수심이 얕고 해변이 넓을 뿐만 아니라 해수욕객과 부딪힐 염려도 적고 해변과 서프숍과의 거리도 가깝거든요. 물론 제주, 양양, 강릉, 고흥, 영덕, 어디든 다 좋으니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그날 파도 컨디션에 따라 강사님들이 재밌게 서핑을 지도해주실 거예요. 다만 좋은 파도가 매일 칠 수 없듯이, 한 번의 경험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서핑은 매일 다른 파도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가는 운동이니까요.

2020년 시흥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서핑장인 ‘웨이브파크’가 개장했어요. 일정한 파도 위에서 연습할 수 있는 데다, 시설과 강사진도 정말 훌륭하더라고요. 만약 저도 여기서 서핑을 시작했다면 초보 딱지를 더 빨리 뗄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웃음)

웨이브파크에서 서핑을 즐기는 세계적인 서퍼, 토쉬튜더와 유타세즈츠

Q

서핑 덕후들은 사계절 모두 각각의 재미가 존재한다고 말해요. 계절별 서핑, 각각 어떤 특징이 있나요?

A

우리나라에는 남쪽에서 해안으로 들어오는 너울과 일본을 에둘러 러시아에서 동해안으로 들어오는 너울 두 가지 종류의 파도가 있는데요. 여름엔 대체로 남쪽 너울이 발달해서 부산, 제주, 고흥, 거제, 넓게는 태안에서까지 서핑을 즐길 수 있어요. 겨울에 가까워지면 북동 너울이 발달해 동해안 대부분 지역에서 파도를 탈 수 있고요. 한겨울엔 가끔 3m가 넘는 파도가 들어오는데, 이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숏보더들은 겨울을 기다렸다가 바다에 몸을 맡기곤 한답니다.

수상레저는 여름에 수요가 많다 보니 서핑 역시 여름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생각보다 북적이는 해변을 보고 놀란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봄에 시작해 보시라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봄이면 동해안에도 좋은 파도가 있을 확률이 높고, 비교적 사람도 적어서 좀 여유 있게 서핑을 할 수 있거든요.

겨울과 초봄엔 두께 5mm 정도의 슈트와 글러브, 부츠를 착용해야 한다.

Q

서핑 덕후로서 올해 꼭 해보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A

다시 서핑을 시작하는 거요! 서핑에 관해 책을 쓰기까지 한 사람이 이런 말 하는 게 참 민망하기도 한데요. 사실 ‘아무튼, 서핑’을 쓸 때쯤 부산에서 경주로 이사를 왔어요. 부산 거주했을 때야 15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었지만, 경주에선 송정이든 월포든 한 번 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리거든요. 게다가 경주에 정착하고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서핑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고요.

어느덧 일주일에 한 번이 한 달에 한 번이 되고, 그러다 또 석 달에 한 번이 되고···. 그렇지만 오히려 멀어지니까 제가 얼마나 서핑을 좋아하고 있었는지 더 되돌아볼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는 다시 서핑을 시작하며 잃어버린 저를 또 바다에서 건져 올려야겠어요. 혹시 바다에서 저를 만나거든 언제든 반갑게 인사 나눠요!

안수향
작가

글과 사진,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일로 한다. 서핑 덕분에 물가에 서 있기보다 바다에 뛰어드는 태도를 선택한 이후 사진과 글이 더 즐거워졌다. 현재 경주에서 필름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틈틈이 필름으로 물, 돌, 빛, 입자에 관한 사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서툴지만 푸른 빛을 썼다.

주요 저서아무튼, 서핑,서툴지만 푸른 빛,오래된 미래

인스타그램@2nd_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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