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덕질
중고거래로 만나는 득템의 재미
“숨겨진 보석을 찾아요”
중고거래 플랫폼을 보다 보면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곤 합니다. 새것과 다름없는 제품을 저렴한 값에 ‘득템’할 때도 있고요. 반대로 쓸 만하지만 제게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누며 자원순환에 기여하기도 하죠. 고은규 작가님은 ‘마당 쓸고 돈 줍고’라는 속담처럼, 집 안을 정리하며 경험하게 된 중고거래 덕에 일상의 많은 부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하는데요. 취미는 덕질 5월호에서는 알뜰거래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중고거래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소비자시대 독자님들께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2007년에 등단해서 지금까지 소설을 써온 소설가 고은규입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학원과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저를 ‘고등어’ 혹은 ‘고등어 작가’라고 부르곤 합니다. 이유는 조금 웃픈데요. 과거 홍보용 전단지와 플래카드를 만들었을 때, 인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고등국어 고은규’에서 ‘국’자가 사라진 ‘고등어 고은규’로 인쇄되었고, 그대로 각 가정집에 배포된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저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전단지를 본 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재미있어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자칭타칭 ‘고등어’로 불리고 있답니다.
중고거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자연스럽게 집 안 환경에 집중하게 되었고요. 그러다가 지인에게 인상 깊은 말을 들었어요. “대출로 집을 샀기에 거실은 은행의 것”이랬죠. 농담이었겠지만 그 말을 듣고 집 안을 둘러보니 내가 효율적으로 써야 할 공간을 짐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조금씩 물건을 정리했어요.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면 지칠 수 있기 때문에 하루는 싱크대 하부장 두 칸, 하루는 다용도실 선반 세 칸만요. 그리고 미션을 수행하듯 안 쓰는 물건은 필요한 분에게 팔거나 나누기 시작했어요. 필요한 물건은 새것을 고집하기보단 중고거래로 구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물건을 사고, 팔고, 나눈 지 만 4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던 ‘정리된 공간’으로 바뀌자, 집에서 휴식과 안정을 느낍니다.
다양한 종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 있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은 어디이며, 그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자주 이용하는 건 ‘당근마켓’입니다. 이용자의 거주 지역을 기반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플랫폼 특성상 가깝게는 같은 아파트 단지 이웃과, 멀어도 같은 동민 혹은 구민들과의 거래가 주를 이루는 편이죠.
한 번은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서 스테인리스 찜기가 급히 필요했어요. 손님이 오기 1시간 전이었고요. 물론 근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지만 스테인리스는 연마제 제거가 필수잖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중고거래 플랫폼에 검색해보니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사는 분이 제가 찾던 찜기를 판매하고 있던 거예요! 정말 반가웠죠. 또 한 번은 제가 일하는 곳에서 작은 세미나를 열게 되었는데, 참석 인원이 초과한 탓에 테이블이 부족하여 허둥거렸던 적이 있었어요. 마침 가까운 곳에 계신 분이 테이블을 내놓아서 바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판매하고 있던 물건을 급히 사간 분도 계셨답니다. 이처럼 근거리 이웃과 빠르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당근마켓’을 주로 사용하게 된 매력이지 않을까 싶어요.
중고물품 직거래를 하다 보면 약속 장소에서 거래 상대방을 찾을 때 ‘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눈치싸움이 시작되곤 하더라고요. 작가님은 상대방을 확인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초반에는 남편에게 대신 나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낯선 사람 만나는 걸 많이 부담스러워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물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던 구매자가 저희 남편에게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내 대신 중고거래를 하게 된 두 남편의 만남이 이뤄진 거죠. 이제는 남편에게 계속 부탁할 수 없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제가 직접 나간답니다. 처음엔 먼저 말 거는 게 망설여지곤 했는데, 거래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거래하러 온 분들을 한눈에 알아보겠더라고요. 보통 판매자들은 물건이 든 종이 가방이나 부직포 가방을 들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당근이세요?”라며 말을 건네는 거죠. 물품 이름을 댈 때도 많아요. “혹시 접시?” 아니면 브랜드 이름으로 “저, 혹시 조말론?”
고심 끝에 구매한 새 물건보다 중고로 얻은 물건을 더 잘 쓰게 되는 경우도 있죠.
‘이건 정말 잘 샀다!’ 싶은 물건이 있다면요?
당근마켓에는 키워드 알람 기능이 있는데요. 스탠드가 하나 필요해서 키워드를 등록해 두었던 어느 날, 제 취향을 저격하는 청동 스탠드가 올라왔다는 알람이 올라왔어요. 그 스탠드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추측건대, 가격이 더 내려가길 기다리느라 판매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충분한 가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연락드려 구매하게 되었답니다. 판매자가 업종 변경으로 주문 제작했던 스탠드를 안 쓰게 돼서 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총 3개를 구입해서 하나는 사무실에, 하나는 제 서재에, 남은 하나는 시 쓰는 지인에게 선물로 줬습니다. 흔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중고거래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 『당근에 너를 보낼래』를 발간하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비자시대 독자들께 소개 부탁드려요!
『당근에 너를 보낼래』는 지난해 제가 쓴 첫 에세이집이에요. 독자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책 띠지와 작가 소개 페이지에 ‘고등어 작가’라는 별명도 써보았답니다. 책에는 수백 건의 중고거래를 하며 겪었던 일 중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었던 4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담았어요.
『당근에 너를 보낼래』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팔고, 나누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 물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마로니 인형을 갖게 된 배경이나 그 시절의 감정과 상황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집 안 정리뿐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크고 작은 물품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필요한 분들에게 제 에세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의류부터 운동기구, 가전제품, 반려동물 용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중고거래하셨어요.
중고거래 잘하는 팁을 소개해 주세요.
글 쓰는 일과 학생들 가르치는 일 모두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모르는 사람과 거래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약간의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거란 전제를 미리 둡니다. 살 때는 싸게 사고 싶고, 팔 때는 비싸게 팔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이익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작은 손해에도 불쾌감을 느끼기 십상이에요. 중고거래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해요.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매너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은 분들도 있지만 인상이 찌푸려지는 분들도 더러 있죠. 저 역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줬을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저는 물건을 팔 때는 구매자의 마음을 생각할 때가 많아요. 상품의 중고거래 시세를 확인 후 싸게 내놓고, 안 쓰는 물건이 있다면 하나 더 챙겨주는 식으로요. 그렇게 하면 물건이 빨리 처분되고 제 공간은 더 여유로워집니다. 필요 없어서 버릴까 고민하고 있던 물건, 싸게 내놓는다고 큰 손해는 아니잖아요. 빠른 거래를 원하면 제품에 대한 정확하고 상세한 설명과 여러 장의 상세 컷을 올리는 것도 거래 성사에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중고거래 덕후로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면?
방송에 나와 중고거래 경험을 이야기한 연예인들이 많아요. 유명 연예인들이 뭐가 아쉬워 중고거래를 할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제가 해보니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겠더라고요. 거래 성사도 일종의 작은 성취이며, ‘거래완료’가 뜻밖에 기쁨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2023년 7월 제가 이용하는 중고거래 플랫폼의 가계부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어요. ‘꽃뫼댁(닉네임)’님의 한 달 동안의 거래는 소나무 6그루를 심고, 자동차 4,164km를 덜 타고, 에어컨 1,163시간을 끈 것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너무 과한 평가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이 지구를 위해 작은 실천을 한 것 같아 매우 뿌듯했어요. 많은 분이 집에서 안 쓰고 쌓아두는 물건을 순환시키는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게 있어요. 바로 안전! 최근 서초구청에서는 주민들의 안전한 중고거래를 위하여 ‘우리 동네 안심 거래존’을 마련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아, 정말 구민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다른 지역에서도 이번 사례를 참고하여 자원 순환과 안전한 중고거래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1997년에 썼던 「급류타기」가 만 10년 뒤인 2007년에 『문학수첩』 단편 소설 부문으로 당선되며 등단했다. 3년 뒤,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에어컨 없는 서재에서 완성한 장편 소설 『트렁커』는 2010년 제2회 중앙장편 문학상을 받았다. 그동안 장편 소설인 『트렁커』 『데스케어 주식회사』 『알바패밀리』 단편집 『오빠 알레르기』 등을 출간했다. 저자의 첫 에세이인 『당근에 너를 보낼래』는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었을 때, 집 안 환경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안 쓰는 물건을 중고거래 하다가 글의 소재를 얻어 집필하였다.
주요 저서당근에 너를 보낼래, 트렁커, 데스케어 주식회사, 알바패밀리, 오빠 알레르기, 쓰는 여자, 작희(교유서가) 5월 출간 예정.
인스타그램@catbook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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