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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신드롬, 뉴트로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무엇이든 지나간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야만, 새로운 것의 가치를 더 깊이 알 수 있다는 말이죠. 요즘 이와 비슷한 맥락의 신조어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그 이름하여 뉴트로(New-tro).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쳐 등장한 이 시대의 신드롬입니다.

옛것이여, 그리워라! 향수에 젖은 ‘어른이’

지난 몇 년간 인기리에 방영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전 연령층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당 시대에 몸을 담고 자라온 어른에게는 지난날의 향수를, 그 시대를 접해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생소한 문화를 간접 경험할 참신한 기회였으니까요. 특히 가장 최근작인 ‘응답하라 1988’은 전후 불경기를 겪어야만 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청년기를 담은 이야기로, 안방을 웃음과 눈물로 물들였죠. 하지만 드라마에도 등장했듯, 당대 청년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려운 경제 형편상 원하는 데까지 교육을 받지 못한 이도 많았고, 여가나 문화 활동 등을 즐길 여유가 유달리 없었습니다.

©tvN©현대차

실제 2010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 중 1년에 공연, 전시나 스포츠를 한 번이라도 관람한 사람은 47.8%로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당대 자신의 일상을 즐기지 못했던 어른들은 자라나서도 문화 활동을 만끽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이 불어온 ‘레트로’ 열풍으로 향수에 한껏 젖어 들 수 있는 특권이 생겨났습니다. 오래 지난 연애편지를 들춰볼 때마다 다신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어렴풋이 샘솟듯, 그때 그 시절 자신과 함께했던 옷, 소품 따위가 과거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나름대로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죠. 레트로는 지난 젊음과 풍경을 그리워하며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어른이 문화’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뻔한 유행의 시대, 촌스러움은 곧 개성이다

누구나 최신 유행을 따르는 이 시대에, 도리어 ‘옛것’의 매력에 푹 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어느 날, 유명 가수가 통이 넓다 못해 흘러내릴 것만 같은 큰 치수의 정장에, 9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벨트나 신발을 몸에 걸친 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릅니다. ‘왜 저렇게 촌스러운 패션을?’ 대중의 의문도 잠시,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만 좇던 이들은 과거의 것만이 지니고 있는 색다른 ‘멋’에 매료되고 맙니다. 특히 요즘 동묘의 구제시장, 광장시장에는 20·30세대가 넘쳐납니다. 이들은 통 넓은 바지와 멜빵 바지, 벙거지와 어글리 슈즈 등의 철 지난 옷가지를 부단히 골라냅니다. 오랜 세월을 간직해 빈티지한 매력을 뽐내는 옷은 세상에 단 한 벌 뿐이며 저렴한데다, 나만의 개성으로 새로이 꾸며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죠.

또 빠른 멜로디와 영어 가사, 흥 넘치는 비트가 울려 퍼지던 음악 시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담백한 순우리말 가사와 느릿느릿한 곡 전개, 옛 시절을 회고하게끔 하는 선율은 무엇이든 ‘빨리빨리’ 흐르는 귓가에 위안이 되어주었죠. 식당과 카페의 모습도, 각종 상품의 패키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옛것이 주는 무언의 편안함에 매료된 사람들은, 어김없이 ‘레트로’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세련된 색채와 디자인보다, 제법 촌스럽게 느껴질 법한 익숙한 모습은 도리어 더 진귀하게 느껴집니다. 더욱이 ‘요즘 것’과 ‘지난 것’의 매력을 조화롭게 섞어낼 경우, 그 모습은 최신 유행만을 좇는 시장에서의 새로운 차별점이 될 수 있죠.

지친 ‘디지털’ 세대, 잠시 ‘아날로그’에 머물고파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와 기술력이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 이렇게 과잉된 것은 현대인에게 도리어 피로감을 선사합니다. 매사 어딜 가든 선택지는 너무나 많고, 매번 갈림길에 서서 고민하는 것도 괴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과거의 산물은 사뭇 다릅니다. 직관적인 조작법을 통해 필요한 정보와 기능만 쏙, 골라 누릴 수 있죠.

대중이 과거 유행했던 오락기, DDR 등 단순한 재미를 주는 게임을 즐기거나,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기계식 타자기와 수동 카메라에 손을 뻗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부족했던 기술력의 산물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오히려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덜어내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아이템이니까요.

시간의 흐름은 야속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여러 문화를 다양한 방향으로 변모시키며 새로운 매력을 뽐내게끔 합니다. 늘 새로운 것 사이에서, 우리는 향수를 만끽하는 여유를 즐기는 것일 테고요. 아마 먼 미래에는, 오늘날의 최신 유행가와 패션, 물품은 또 머나먼 과거의 산물이 될 것입니다. 그때 또 수많은 이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옛것이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