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소비철학

미니멀 라이프가 준 선물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하는 미니멀 라이프’ 저자>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삶의 큰 화두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물욕이나 허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제가 미니멀 라이프에 의존하는 까닭은 여태 제대로 된 소비를 하지 못 했고 지금도 잘 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밀리카 작가의

한 줄 소비철학

물건을 소비하는 건 소중한 인연을 맺는 것

나만의 소비철학을 갖기까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비웠습니다. 공간이 쾌적하게 변한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한편으로는 그만큼 제가 가진 물건이 많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울 물건은 곧 쓸데없는 물건이었던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건을 채울 때는 제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몰랐습니다. 비울수록 곁에 남겨지는 물건이 무엇인지 발견하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저란 사람의 물건 취향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죠.

어쩌면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긴 세월 소비에 실패하며 살아온 제 삶을 쓰라리게 직시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비우면서 얻은 저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소비철학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추천 하나. 조심스럽게 인연을 맺듯 삽니다

인연을 함부로 맺는 게 아니라는 명언이 있듯, 저는 물건을 소비하는 건 인연을 맺는 거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함부로, 충동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 경계합니다. 제 경우엔 충동구매나 다급한 마음으로 산 물건은 대부분 비움이라는 결과로 사라지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잘 비우는 것이 최선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비우지 않는 힘이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라 느낍니다. 소비와 비우기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으니까요. 물론 적절한 비움은 삶의 균형을 주지만, 어느 정도 비워진 상태에서는 물건을 택할 때 마치 인연을 맺는 것처럼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물건은 사람과의 인연과 비슷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인기 많은 사람이 저와 잘 맞는다는 보장이 없고, 평범한 사람이라 해도 저와 너무나 잘 맞는 인연이 있곤 하죠. 다른 이들이 아무리 열광하는 물건이라 해도 제 마음에 차지 않으면 포기하고, 반면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라 해도 제 마음에 흡족한 기운이 넘치면 주저 없이 고릅니다. 물론 결과가 백퍼센트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수록 어떤 타입의 사람이 저와 잘 맞을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비실패로 쌓은 경험으로 인해 어떤 물건이 저와 잘 맞을지 점점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 나가 듯 물건을 소비하면, 충동구매 대신 저와 좋은 인연이 되어줄 물건을 기다리는 여유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저희 집은 아직 없이 사는 물건이 꽤 됩니다. 무선 물걸레나 전기포트를 구매하지 않는 까닭은 굳이 없어도 상관없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저희 부부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만나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였다면 그냥 아무거나 대충 사서 쓰다가, 버리면 되지 하는 안일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다린 시간만큼 인연을 맺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드는 물건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큽니다.

추천 둘. 지구에 해가 되지 않는 소비이기를

미니멀 라이프로 많은 물건을 비울 때 적지 않은 물건을 쓰레기로 만들었음을 인정합니다. 제가 사는 공간은 단정해졌을지 몰라도 실패한 소비의 결과물은 지구환경에 부담을 주었을 겁니다. 지구에게 엄청난 신세를 졌다는 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아울러 제가 매일 먹고 마시고 쓰는 물건은 대부분 오래도록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지구에 해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엄격한 룰을 적용해 모든 물건을 친환경 혹은 제로웨이스트로 생활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다만 최선의 방법으로 차선의 소비를 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 결과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화장지를 나무가 아닌 밀짚으로 만든 것으로, 플라스틱 혀클리너를 스테인레스 재질로, 나일론으로 만든 치실을 숯 치실로, 플라스틱 칫솔을 대나무로 차츰차츰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점진적인 변화에 불과하지만 제가 늘 버리던 플라스틱 혀 클리너 무게만큼이라도 지구에 해가 되지 않는 소비이기를 소망합니다.

전에는 물건을 살 때 가격과 품질, 디자인 등을 고려했다면 지금은 그 물건을 다 쓰고 난 이후 쓰레기가 되었을 때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립니다. 제가 버린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거북이의 코를 막히게 해 피를 흘리게 하지 않을까, 비닐봉투가 지구환경을 아프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친환경 제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저는 매일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못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친환경적인 소비를 꾸준히 기록하고 스스로가 이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선의 방법이라 해도 차선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비겠지만 그래도 최악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품어보면서요.

추천 셋. 어정쩡한 절약보단 확실한 사치

과거 저는 절약은 어쩐지 현명하고, 사치는 낭비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싸면 무조건 사도된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어서 없어도 되는데 많이 사두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사고 싶었던 10만 원짜리 옷을 한 벌 사는 대신, 마음에 차지 않은 1만 원짜리 옷을 열 별 샀던 게 오히려 낭비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비싸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정쩡한 절약이란 핑계로 무분별하게 소비하느니, 사치로 보일지언정 제대로 사서 오래오래 만족하며 잘 쓰는 것이 건강한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가격이나 브랜드 유명도를 떠나서 정말 사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대충 다른 물건을 사는 실패는 거듭하지 말자는 거죠. 차라리 사지 않거나 혹은 진짜 마음에 드는 걸 살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어영부영 산 물건들로 공허한 소비를 되풀이 하는 건 멈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소비는 잘 하면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수단이 되고, 잘 못 하면 삶에서 비워내어야 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소비의 기쁨이 커지는 걸 느낍니다. 많이, 자주 사는 소비만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조금 적게, 조금 느리게 인연을 맺어가는 소비가 흐뭇합니다. 아름다운 인연처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과 만나니까요.

밀리카 작가는?

한때 그녀를 가장 설레게 하는 단어는 세일과 사은품이었다. 예쁘니까, 신상품이니까, 울적하니까 등의 이유로 쇼핑을 습관처럼 하다 보니 집은 항상 물건으로 가득했다. 어느 날 우연히 일본 미니멀리스트의 텅 빈 방 사진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타고난 미니멀리스트인 남편을 만나 든든한 조언을 얻으며, 미니멀 라이프와 함께 하는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또 소유물을 줄이며 찾아온 생활의 변화를 진솔하게 담은 책 <마음을 다해 대충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었다.

시월의 담 [살림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