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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아보니 어때요? 무작정 행복한 건 아니지만

김자혜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 저자>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나요? 여기, 시골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도시 여자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다가 지역을 옮겨 터전을 꾸리며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 그녀가 털어놓는 시골생활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귀 기울여 보세요.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꿈

2015년 겨울, 저와 남편은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을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부터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햇수로 4년. 조그만 집에서 조그맣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세 끼 식사를 정성스럽게 차려먹고 각자의 몸을 단련하고 충분한 잠을 잡니다. 별일 없이 삽니다. 하지만 우리는 엄밀히 말해 꼭 시골살이를 원해서라기보다는,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형태를 이루기에 시골이 적절했기 때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벌고 덜 쓰는 삶, 노동 시간보다 여가 시간이 많은 삶을 원해!’ 라는 단순한 요구에서 시작된 일.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계기를 통해 용기를 좀 더 낼 수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시골생활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

그동안 시골생활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들은 대체로 맥락이 없이 갑작스러웠고 무례한 경우도 있었어요. 다 안다는 듯 떠보는 사람들도, 그런 생활이 행복할 리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정체 모를 로망으로 가득한 눈을 뿅뿅 반짝이며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모든 일은 오해라고 했던가요. 저는 대부분의 질문에 어정쩡한 미소로 응답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억나는 몇 개의 질문을 추려서 묻고 답해보기로 합니다. 직접 묻고 답하는, 조금 이상한 Q&A입니다.

01

시골에 살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그만큼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타인과의 다양한 연결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다보니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을 통해 저의 약한 부분과 강한 부분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도요. 저는 제법 잘 거절하는 사람이었고, 시련을 일단 외면하고 보는 이상한 버릇을 가졌고, 요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덕분에 지금 요리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로 두 번째 책을 쓰고 있습니다.

02

스스로 시골생활에 맞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지금 나는 행복한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고 자신의 생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부터 시작해보세요. 깊이 들여다보면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낯선 일에 도전하고 스스로 해결하기를 즐기는 사람인가? 하는 점은 고려해보았으면 합니다. 시골에서 살려면 다양한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해야만 해요. 우리는 이 집에 살면서 스스로 창고를 칠하고, 미장을 하고, 지붕을 고치고, 뒷마당 배수 방식을 고안하고, 아래채 난방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씨앗을 심고, 가지치기를 하고, 정원 기계를 고치고, 때마다 집을 보수하며 살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싫다면 시골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03

시골에 살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뭔가요?

환경이 바뀌어도 사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여기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만의 바운더리를 확보하는 방법, 돈을 대하는 방식,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비법. 즉 살아가는 모든 태도는 어딜 가든 그대로 따라오죠.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도시에서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은 시골에서도 사람 때문에 힘들어할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정도 습관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끊임없는 소비와 낭비에 기반한 생활 패턴을 버렸다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옷장을 열면 점퍼, 카디건, 재킷, 코트, 스웨터로 가득 차 있었어요. 신지도 않는 신발은 수십켤레에 다 먹지 못할 양의 식재료를 가득 쌓아두었고, 그릇과 주방기구는 사도 사도 끝이 없었죠. 지금은 그중 가장 좋은 것들만 남겼습니다. 가장 좋은 품질의 물건을 사서 오래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어요. 그것이 제게도 좋고 지구에도 좋은 일이지요.

04

하루 종일 뭐 하고 지내요?

얼마 전, 드라마를 보다가 한 대사에 무릎을 치며 공감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말합니다. “네가 살림을 안 해봐서 모르나본데, 바쁜데 심심해.” 시골생활이 딱 그렇습니다. 바쁜데 심심하고 심심한데 바빠요. 한두 가지 일을 해결하면 하루가 휘리릭 지나갑니다. 그건 접근성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서울에 살 때에는 밥을 사먹고 커피 한 잔 마신 뒤 은행에 들러 업무를 보고 우체국에 들러 택배도 보내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이 모든 일들을 한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여긴 아니에요. 그 모든 것들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요. 완전히 다른 생활이지요.

05

시골은 텃세가 심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러다 동네 머슴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는 ‘부름’을 ‘수락’하는 일을 멈췄습니다. 우리의 속도대로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방해하는 일은 그 어떤 것이라도 내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과 다른 패턴으로 사는 일은 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유롭기도 합니다.

06

시골살이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초반 적응기를 버틸 수 있는 고정 수입!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이 있어야 합니다. 오십만원이든 백만원이든, 적더라도 꾸준해야 해요. 적응기는 6개월이 될 수도 있고 2년 혹은 3년이 될 수도 있어요. 모아둔 돈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고요. 그래서 저희는 처음부터 시골 민박을 염두에 두고 작은 아래채가 딸린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정착하는 과정을 버티게 해줄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어요. 꼭 무엇을 해서 정착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라, 살아보며 그 지역에 맞고 우리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자는 작정이었기 때문에 처음 몇 년은 정착하는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그 기간을 지나 생활이 정착되면 민박을 접고 그 건물을 사무실이나 작업실로 쓰려는 요량이었죠.

07

경제적인 면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나요?

아래채 민박 손님을 받아 기본 생활비로 사용합니다. 거기에 저의 원고료, 인세, 남편의 기타 수입 등 별도 수입이 있으니 에어컨도 틀고, 가끔 외식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어요. 만원씩 오만원씩 적금도 붓고, 따뜻한 겨울옷도 삽니다. 시골에 내려오면서 남편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커피 원두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난 괜찮아”라고요. 지난 3년 반 동안 커피가 떨어져서 슬펐던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커피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불행하지 않다는 건 스스로 만든 기준이에요. 타인을 기준으로 삼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월급에 기대어 먹고 살지 않는 상황은 만들었다고 봐요. 직장이라 여겼던 일을 연장해서 보니 직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어디에서라도 그 일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우리는 그것을 삶의 저력이라고 표현합니다.

08

지금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후계농이 아닌데 낯선 곳에서 땅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젊은 농부들을 보면 ‘아, 우리는 역시 가짜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빈둥거리는 주제에 잘난 척 하고 있구나’라고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는 사실 실패에 가깝죠. 땀 흘려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고, 어쨌든 관광객들이 건네는 돈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사는 동안 새로운 꿈이 생겼고, 앞으로는 그것만 바라보고 나아가려고 해요.

시골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Talk 01

시골에 산다고 해서
무작정
행복하지는 않아요

시골생활을 담은 저의 책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의 서문에 ‘여기에 행복이 있냐고 묻지 마세요’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의 서문을 보니 ‘시골에 가니 희망이 있었다’라고 썼더라고요. 저는 그런 말은 못하겠어요. 어디에나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시골에 살면 무작정 행복할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거짓이고, 시골에 별거 없다는 말도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삶이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잖아요. 깊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곱씹는 순간, 잠들지 못해 눈을 끔벅이면서 속울음을 울어야 하는 순간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이 책은 사소한 것들에서 행복해지려는 악다구니’라고 썼어요. 실제로 그랬어요. 힘들거나 외로울 때 글을 쓰며 다시 힘을 얻곤 했으니까요.

이곳에 살면서 초반에는 마당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꽃과 나무를 가꾸고 텃밭을 일구면서 이전에 없던 기쁨을 맛봤거든요. 이 기분을 표현할 때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의 한 구절을 자주 인용하곤 합니다. ‘실리와 편리를 둘 다 희생하고 얻은 게 기껏 봉숭아나 채송화 나부랭이’라는 말이에요. 도시의 행복은 대체로 성취나 소유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성취 말고도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사소하고 지나치기 쉬운 것들, 내가 스스로 발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대체로 자연이 베풀어준 것들이죠.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고 씨를 떨구고 기어이 다시 살아나고 하는 것들. 무시무시하게 춥던 어느 겨울, 매화나무 가지에 새순이 빨갛게 맺혀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데 저는 나무 앞에 선채로 좀 울었습니다. 자연에서 얻는 감정은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좀 달라요. 환희랄까 경탄이랄까. 그리고 요즘에는 읽고 쓰는 일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Talk 02

시골생활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책을
읽어 보세요

소로의 <월든>이나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같은 고전을 저는 이곳에 내려와서 읽었어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전에도, 멀리에도 있었구나 라고 놀랐습니다. 제가 정말 추천하고 싶은 건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라는 책이에요.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며 겁을 주는 책입니다. 목차만 읽어봐도 무시무시해요. 아름다운 풍경만 보고 로망을 품은 자들에게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라고 말하고, 촌부들의 온정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으라’고 충고하고, 조용한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고, 또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고 일갈하는 책입니다. 심지어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고 겁도 줘요. 신랄하고 괴팍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책이죠. 섣부른 환상을 품었다면 꼭 읽어봐야 하는 내용들이라서 추천합니다.

Talk 03

떠나왔다면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열어두기를

가끔 방송에서 귀농·귀촌인들이 하는 이야기에 깜짝 놀랍니다. 도시에서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숨이 막혀서 내려왔다는 이야기. 대체 그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들 계속 삶을 이어가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이야기.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에라이 어디든 멀리 멀리 떠나버리자 하는 마음가짐으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골은 도피처가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치열하거든요. 저는 이 길을 견디지 못해 저 길을 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길도 괜찮지만 저 길에 호기심이 생기니 저쪽으로도 한번 가보고 싶다 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으면 하는 거죠. 또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건, 건너온 다리를 반드시 불태울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떠나왔다면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열어둬야죠.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것이 실패가 아니듯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 역시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돌아갈 때의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요.